이주영
이주영(1990~)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언어’를 소재로 평면작업, 공간설치, 내레이션 등의 다양한 작업을 한다. 런던예술대학교 캠버웰예술대학 회화전공 석사 졸업 후, 현재는 숙명여자대학교 회화전공 박사를 재학 중이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단체전과 개인전 등 전시를 개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언어를 기호 자체를 넘어선 행위를 실행하는 주체로 바라보고, 발화 상황과 맥락의 변형에 주목한다. 작가는 뉴스 속 왜곡되고 소외된 인물이 되었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언어를 통해 허구로 명명될 수 있는 시대상에 관심을 가져왔다. 언어가 가진 자율성과 연속성을 기반으로, 화자와 청자 사이 시공간 속에서 언어가 변모하고 권력이 생성, 행사되고 왜곡되는 지점들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다.
작가 인터뷰
Q1. 환대와 배제는 나타나는 형식보다 그것이 시작되는 마음에서 구별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못한 환대가 있는 한편, 최선의 배제도 있는 것처럼요. 작가님은 타인을 맞이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어떤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라 생각하세요?
환대와 배제는 '타자를 어떻게 의미화(언어화)하여 이해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타자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언어로 표현되고, 이는 소통의 첫걸음이 됩니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권력이 작용하는 장치로서, 우리의 이해를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하거나 왜곡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왜곡은 의도된 배제뿐 아니라, 무심코 이루어지는 마지못한 환대에서도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대중매체는 특정 집단을 고정된 이미지로 표현해 그들의 정체성을 제한하거나 왜곡함으로써 배제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언어적 프레임은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환대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인 주체성을 배제할 수 있습니다.
결국, 환대와 배제를 나누는 기준은 타자에 대한 언어적 접근이 그들의 경험과 정체성을 얼마나 왜곡하거나 존중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단지 언어의 사용 방식이 아니라, 타자를 진정성 있게 이해하려는 우리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Q2.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모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배제와 환대 등의 이분법적 요소들이 무력화되는 무풍지대가 존재하기도 하며, 그곳에선 아이러니하지만 자연스럽게 상반되는 개념들이 공존합니다. 이러한 모순과 역설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제 작업은 포획하는 권력 장치로서 언어에서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무산되어버린 실재와의 만남을 재개(혹은 극복)하기 위해 언어의 맥락 사이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의 마주침에 주목합니다. 환대와 배제 이분법적 요소들을 무화(無化)시키는 방식은 저에게 언어가 다 담아내지 못한 실재 감각들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저의 작업에서 권력을 떼어내고 내달리는 자율적이고 연속적인 속성의 언어는 마치 무력화된 무풍지대와 비슷합니다. 이것은 선 드로잉을 통해 가시화되고, 기호를 시각적이고 물질적으로 보는 구체시 기법을 통해 고정된 의미를 찾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촉감적인 목탄드로잉을 통해 언어를 물질화하고, 공간 전체를 아우리는 분위기로 묘사됩니다.
Q3. 작가님의 작업은 ‘언어’가 가장 주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작업에 있어서 언어를 소재로 사용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뉴스 속 왜곡되고 소외된 인물이 되었던 개인적 경험에서 언어를 통해 허구로 명명될 수 있는 시대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사건이 여론에 의해 왜곡되는 경험을 했고, 같은 대상이더라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의미화(언어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소통의 기본적 도구이자 실재를 구체화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언어가, 결국 실재와 맞닿지 못하고 현실을 왜곡하고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기’라는 단어가 대상을 동물이 아닌 음식으로 보게 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대상을 오히려 피상적으로 만드는 언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허구를 만들고 현실을 재구성하기도 하는 언어에 관심을 두고 작업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Q4. 언어의 자율성과 연속성을 형상화하는 대상으로 ‘구체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구체시는 언어를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감정을 표현해보자는 시도로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언어 자체를 흐트러뜨려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게 만드는 구체시가 흥미로워서 작업 소재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환대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언어의 양가적 측면을 모두 무화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그 이중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저의 작업과 의미가 통하는 것 같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Q5. 작가님의 작품에는 신체의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움직임은 무얼 의미하며, 현실에서 그 움직임은 어떤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언어가 대상을 피상적으로만 드러내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언어를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기에 그 이면에 가려진 의미나 구조를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에 저는 언어의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 신체의 ‘움직임’을 연결하고, 이를 영상작업과 관람객의 동선에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영상 작업에서는 언어로 규정된 행위를 신체 움직임의 퍼포먼스로 변환하여 표현합니다. 이는 언어에 노출된 청자이자 또 다른 발화자로서, 언어가 확장시키는 권력 구조를 드러냅니다. 또한, 관람객의 동선을 의도적으로 설계함으로써 작품과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이자 언어적 시스템의 일원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