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무풍지대


  우리가 언젠가 서로를 이방인으로 마주할 때, 그곳은 환대와 배제의 소용돌이 안일 것이다. 호기심과 무관심, 신뢰와 불안이 공존하는 이곳. 선택해야 할 무조건적이고 온전한 방향은 없다. 우리는 단지 그 얽힘 속에서 두 축이 서로의 그림자가 되는 것을 본다. 길을 걸어오면서 자기화한 모든 것들은 이 만남으로 인해 어느 쪽으로도 변모할 가능성을 가지고, 선악의 영원한 구분은 미궁에 빠진다. 방향 없이 모험을 떠났던 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 수많은 교차의 복잡성과 모호함은 유효하다.

 이제는 서로가 알고 있는 가장 고요한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그린다. 무풍지대는 가장 격렬한 혼돈의 중심에서 찾은 진공의 공간, 각자의 방향성이 잠시 유보되는 순간이다. 내 길과 네 길, 내 시간과 네 시간. 이 모든 걸 저버리지 않은 채로 우리가 만난 지금 여기의 문법은 새롭게 쓰인다. 복잡한 관계의 문제를 그대로 응시하고, 대립이 아닌 어떠한 긴장을 유지하며 더욱 섬세한 소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차이의 간극을 메우기보다 틈의 상상력을 무한히 인정하는 식으로,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전시는 수많은 경계들로부터 나타나는 번역의 본질적인 역할을 고민한다. 이곳에서 번역은 언어와 비언어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교환의 과정으로서 환대와 배제에 가해지는 이분법적인 가치 판단을 무력화하고, 우리를 주인 없는 제3의 장으로 이끌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곳에서의 일들은 다시 환영과 적대의 메커니즘에 귀속될 수도 있을 테지만,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 고안한 다른 현실임은 변치 않는다.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기분 좋은 떨림이 있는 이곳에서 우리 역시 이방인으로 처음 마주해볼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