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






  김우진 작가는 사회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참과 거짓으로 나누던 사실들에 대해 균열을 꾀하고, 질문을 던질 공간을 만든다.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작가는 특정 지역에 일정 기간 머물면서 그곳에 관한 이야기, 개인들의 서사를 수집하는 과정을 거쳐 질문을 도출하고 이를 시각적 작업으로 도출한다. 김우진은 서울시립미술관×재외문화원 순회전 《세계의 저편(2024)》,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그룹전 《포스트모던 어린이: 까다로운 어린이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마세요(2023)》 에 참여하며 예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까지 김우진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언어에 주목하여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소멸하는 언어, 제주어에 집중한 작업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언어가 어떻게 우리의 인식을 마비시키는지 그리고 언어가 어떻게 타자로 인식하게 만드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어 받아쓰기 시험>, 4채널 영상, 5분 26초, 2019.


작가 인터뷰


Q1. 환대와 배제는 나타나는 형식보다 그것이 시작되는 마음에서 구별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못한 환대가 있는 한편 최선의 배제도 있는 것처럼요. 작가님은 타인을 맞이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어떤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라 생각하세요?

  환대든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든 그 사림이나 집단에 있을 때 그게 기준이 돼요. 예를 들어 선물을 줄 때도 내가 선물을 주는 마음이 좋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한 게 뭐고, 적합한 게 무엇인지를 물어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 방향이 받을 사람에게 있어야 하고 이것이 진정한 환대가 아닐지 생각해요.



Q2.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모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배제와 환대 등의 이분법적 요소들이 무력화되는 무풍지대가 존재하기도 하며, 그곳에선 아이러니하지만 자연스럽게 상반되는 개념들이 공존합니다. 이러한 모순과 역설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사실 제 작품은 모순과 역설이기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모순과 역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작품을 처음 만들 때 어떤 집단에 들어가게 되는데, 처음에는 항상 배제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작업을 마치고 이런 작업을 했다며 보여드릴 때는 마음에서의 환대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태고의 변화들도 많이 봤었고 그래서 그 과정 자체가 모순과 역설, 환대와 배제가 아닐까 싶어요. 결과와 과정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동의하는 부분과 아닌 부분도 있고, 여전히 거리를 두고 지켜보시는 분들도 계세요. 나중에 봤을 때는 이렇게도 문제 제기가 가능할 수 있겠군요, 하고 말씀을 주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Q3. 작가님께서는 주로 제주어, 광둥어, 민남어와 객가어 등 아시아 국가의 언어 소멸에 대해서 작업의 소재로 삼고 계시는데, 작가님께서 아시아 국가를 선정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작업할 때, 국가와 그 안의 특정 언어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배경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중국어를 배웠었고, 그 상태로 영국 유학을 갔어요. 그래서 아시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다음 레지던시를 뉴질랜드로 갔었는데, 마우리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다르게 풀었어요. 원래부터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개인적인 질문으로 마우리 언어에 대해 작업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일본을 레지던시로 가게 되었는데, 다 아시아 국가들이었어요. 가서 만난 사람들도 주로 인도네시아나 근처 아시아인들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어요. 그리고 대만으로 가서 예전엔 통역이 가능할 정도로 중국어를 했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보고 싶었어요. 가기 전 두 달 동안 어학원을 찾아가서 배우는데, 원론적으로 들어가서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어요. 그때 언어가 들어온 언어라는 걸 알았고, 그 언어는 아시아의 근대 역사와 연결되고, 한국이 그 안에 있었어요. 제가 영국이 있었을 때 나는 한국인이자 동아시아인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아시아의 역사는 왜 다르게 다가올까 하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에 제주도와 대만을 찾은 것이었어요. 이를 본 홍콩 큐레이터와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일본의 소수 언어를 찾게 되었어요. 근대 이후의 현대, 그리고 가까운 미래까지의 아시아의 역사에서 언어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어요. 아시아의 역사, 언어도 서구의 시각으로 많이 쓰여 있는 걸 알고, 그렇다면 아시아인으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일까 하며 질문이 조금씩 퍼져가면서 작업이 작업을 끌어나가는 듯한 느낌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Q4. 작가님께서는 “표준어라는 사라지는 언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표준어가 가지는 권력이 어떻게 나타나고, 소수어에게 어떻게 비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언어가 나와 타인 사이를 경계 짓는 프레임으로 작동하듯 소수어가 영향을 받은 순간을 목도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사실 표준어는 한국과 일본, 프랑스에만 있던 개념이에요. 프랑스에서 일본에 넘어오고, 그게 우리나라로 넘어왔던 것 같아요. 우리도 표준어를 서울로 규정하듯이 제주는 어떻게 보면 너무 다른 언어라고 생각했고, 제주어를 못 알아듣는 것에 당황했었어요.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는 많이 알아듣잖아요. 제가 이 작업을 공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신이 사투리를 써서 받았던 피해나 고충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걸 보면 저도 서울말에 익숙해져서 인지하지 못했던 지점들이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에서도 오사카랑 도쿄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해요. 서로 자기는 무시한다고 하면서 토로하는 거예요. 아이누어와 류큐어는 정치적으로 핍박을 많이 받았었어요. 민족 말살 정책을 펼쳐서 진정한 아이누어는 사실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금의 사투리도 표준화 규정 자체가 말의 위계를 만들어 버려요. 서울이라는 지역명이 들어가는 순간 서울과 나머지 지역이라는 위계가 형성되고, 서울말은 세련되고 좋은 말이고 나머지는 안 좋은 말이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이건 200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 조금씩 옅어진 경향이 있기는 해요. 지금 홍콩의 광둥어가 딱 그런 케이스라고 볼 수 있어요.



Q5. 작품 제작을 위해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머무는 작업 방식을 택해오고 계시는데, <한국어 받아쓰기 시험>을 제작하며 생긴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Ex. 제주 할머님들과의 의사소통 등)

  <완벽한 합창>을 작업할 때 제가 “저에게 제주어로만 말해주세요”라고 부탁드렸으나 제 얼굴을 본 순간 옆 제주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제주어를 하시다가도 제주어가 안 나오셨어요. 아마 어르신들에게는 정치적 사건들이 몸에 체화가 이미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또 친구가 친구를 소개해 주어 작업을 진행하는데 결국 잘 안됐어요. 손녀에게는 제주어를 하시다가 제가 보니까 바로 서울말을 막 쓰시는 거예요. 그래서 두 분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녹음으로 남겼어요.



Q6. 이전 “Brave New Exercise Project”에서는 집단 체조를 통해서, “Memories project"에선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마비된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향후 작업에서 주목하시는 프레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디지털 멸종 이야기를 풀고 있어요. 디지털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변환이 안 되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고 이거에 대한 연구도 많지 않아요. 사실 아시아에서는 거의 연구하지 않고 있어서 유럽연합과 미국 하와이 원주민이 있는 곳에서 연구가 되고 있는 걸로 알아요. 많은 강대국이 4계절이 있는 북반구에 있고, 위치에 따라 언어, 생명들의 이름과 종류도 다양한데 이건 소수 언어에 훨씬 더 많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 지식은 소수 언어에 있는데, 이게 소멸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 언어들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종말 위주의 언어를 찾아보고,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명과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연결해서 작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